우리 모두는 언젠가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합니다. 그 순간, 수많은 의료 기기에 둘러싸여 의미 없는 시간만을 연장할 것인가, 혹은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평온하게 삶을 정리할 것인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이는 단순히 치료를 거부하는 서류가 아니라, 내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완성하겠다는 존엄한 선언입니다.
1. ‘나의 마지막’을 위한 목소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미래에 자신이 임종 과정에 들어섰을 때를 대비하여,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거나 혹은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두는 법적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의식이 남아있을 때, 건강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훗날 내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이 의향서는 나의 가장 강력한 목소리가 되어 의료진과 가족에게 나의 뜻을 전달하게 됩니다.
2. 고통스러운 선택의 무게를 덜어주기까지

이 제도가 마련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논의를 거쳐야 했습니다. 1997년, 환자 가족의 간곡한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 현장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8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한 가족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마침내 환자의 존엄한 죽을 권리를 인정한 '김할머니 사건'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환자 본인의 의사를 알 수 없을 때, 그 결정을 대신해야 하는 가족과 의료진이 겪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연명의료결정법’(2016년 제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사회적 약속인 셈입니다.
3. 생명 연장과 고통 연장의 갈림길 : 연명의료의 범위

연명의료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시술을 말합니다. 이는 생명을 구하는 치료와는 명백히 구분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연명의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심폐소생술(CPR)
2) 인공호흡기 착용
3) 혈액투석
4) 항암제 투여
5) 체외생명유지술(ECMO)
6)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이러한 의료 행위는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향서 작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계에 의존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 아닌, ‘자연스럽고 평온한 마무리’를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4. 내 의사를 남기는 방법 : 작성 절차와 준비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매우 신중한 과정이며, 반드시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1) 등록기관 찾기: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을 방문해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일부 병원 및 보건소, 비영리법인 등이 해당하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www.lst.go.kr)에서 가까운 기관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2) 신분증 지참: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공인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 충분한 상담: 등록기관의 상담사와 1:1 상담을 통해 연명의료의 의미, 중단 가능한 시술, 호스피스 제도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4) 의향서 작성: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상담사의 안내에 따라 서식에 맞춰 직접 의향서를 작성합니다.
5) 시스템 등록: 작성이 완료되면 의향서는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즉시 등록되며, 이때부터 법적 효력을 갖게 됩니다.
5. 생각은 바뀔 수 있습니다 : 변경 및 철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한 번 작성했다고 해서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관이 바뀌면 언제든지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처음 작성했던 기관이 아니더라도, 전국의 어느 지정 등록기관을 방문하든 신분증만 있으면 간단하게 처리 가능합니다. 온라인을 통한 철회도 가능하여 본인의 의사를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6. 마지막 선물, 건강할 때 준비하세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온전히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능동적인 태도입니다.
이는 나 자신에게는 마지막 존엄을 지킬 권리를,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혼란과 죄책감 대신 평온한 작별의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이 가장 빛나는 건강한 오늘, 나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입니다.